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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투어] ⑭캠핑·서핑 스폿의 활기와 운치 있는 정동진 해무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3.08.2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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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마다 걷기 여행을 하고자 합니다. 요즘 걷기 여행이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충 둘러보고 돌아서는 관광은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모든 감각을 통해 직접 수집된 오감만이 유일하게 진정한 관광으로 여행자를 인도합니다. 길 위에서 게으르게 움직이며 풍경과 세상사를 느껴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사유하고 재발견하고자 하는 여행자의 수요도 점차 늘어나는 중입니다. 천천히 구석구석 걷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여행이 주는 선물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편집자 주>

[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해파랑길’은 우리나라 동서남북을 잇는 코리아 둘레길의 동해안 구간으로, 부산광역시 오륙도 해맞이 공원을 시작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750km의 장거리 걷기 여행길이다. 해파랑이라는 명칭은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라는 조사 ‘랑’을 조합한 합성어로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 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지난해 4월 ‘2021 걷기 여행 실태조사’를 발표했는데 해파랑길이 2021년 걷기 여행자가 선택한 국내 걷기 여행길 중 2위로 꼽혔다. 만족도 면에선 97.3%의 이용자가 여행에 만족했다고 응답했다. 방학, 휴가, 연휴 등을 맞아 해파랑길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몰려들 정도로 그 인기는 엄청나다. 참고로 1위는 ‘제주올레’다.

해파랑길 강릉 구간 [사진=두루누비 홈페이지 캡처]
해파랑길 강릉 구간 [사진=두루누비 홈페이지 캡처]

■ 34코스 : 5월 27일 푸른 바다와 명품 해수욕장(묵호역 입구~한국 여성 수련원 입구 13.8km)

묵호역 뒤편 해파랑길 시작점으로 이동하는 길은 지난 코스 막바지와 비슷하다. 새파란 타일과 시장 풍경을 벽화로 만들어 길을 장식해 놨다. 이번 코스 시작은 여러 시장이 반겨준다. 발한 삼거리 묵호 등대 모형 뒤 묵호 야시장이 펼쳐져 있다.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운영이라 이동식 판매대와 플리마켓 등은 보이지 않는다. 아쉬움은 묵호 중앙 시장이 달래준다. 묵호 야시장이 중앙 시장 안에서 열려 같은 시장이나 다름없지만 상설 시장으로 구분한다. 긴 거리를 점포끼리 마주하고 있고, 상인들은 이른 아침 장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 1941년 묵호항 개항 쯤 시장이 형성돼 80여년 간 동해 시민 사랑을 듬뿍 받은 곳이라고 한다. 물건을 사러 온 아주머니들의 하이톤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걸 보니 거짓말은 아닌 듯하다.

시장 거리를 벗어나면 길은 잠잠해진다. 시설과 부지가 넓은 묵호항을 멀찍이 떨어져 구경한다. 묵호항은 국내에서 석탄과 시멘트 반출항으로선 북평항 건설 이전까지 최대 규모로 자리했다. 동해안 어업 기지 및 피난항으로 이용도가 높고, 1947년 8월 개항장으로 지정됐다. 앞치마를 두른 어부들이 생선을 열심히 나른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여행객들은 바쁜 어부를 잡고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 광경이 펼쳐진다. 여객 터미널도 함께 있어 울릉도로 가는 배도 탈 수 있다. 건물에 가려 시야에 항구가 트이지 않으나 어선과 크루즈선이 어렴풋이 보인다. 반대편은 묵호 별빛 마을이다. 묵호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마을을 도시 재생 사업으로 정비한 곳이라 한다. 동화 어린 왕자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캐릭터로 해 포토존을 만들어 놨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반강제로 포토존 앞에 세우고, 아이들은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동해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및 해랑전망대 [사진=김준철 기자]
동해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및 해랑전망대 [사진=김준철 기자]

좁은 길을 걷다 한 순간 수변 공원이 나오며 여행객의 지루함을 던다. 문어 조형물도 있고 군데군데 심어진 나무가 그늘을 만든다. 계단 위에도 길이 있어 바다를 옆에 두고 깔끔한 산책로를 걸을 수 있다. 반짝이는 동해에 시선이 뺏겨 묵호 등대로 올라가는 길을 놓치고 말았다. 여러 후기를 보니 산마루에 오르면 묵호 등대와 함께 시원한 동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절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꽤 북진한 데다, 해변길 풍경도 준수해 발걸음을 돌리진 않는다. 해랑 전망대 주변 관광객이 몰려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독특한 형태의 사각형이 이어진 터널을 지나게 된다. 지난 코스에서 본 한섬 해수욕장 ‘리드미컬 게이트’와 유사하다. 전망대를 원형으로 한 바퀴 돌면서 동해를 바라볼 수 있다. 맞은 편엔 도째비골 스카이 밸리가 존재감을 뽐낸다. ‘도째비’는 도깨비의 방언으로 어두운 밤에 비가 내리면 푸른 빛이 보여 도깨비불이라 여긴 사람들에게 도째비골로 불렸다는 구전이 있다. 전망 시설인 하늘 산책로와 체험 시설인 스카이사이클, 자이언트 슬라이드 등 경관 조망 시설과 이색 레포츠 체험을 겸비한 곳이다.

해안길을 걷다 보면 ‘묵꼬양’이라는 캐릭터가 군데군데 그려져 있는 걸 목도할 수 있다. 고양이가 생선이나 오징어를 물고 있는 모습인데, 동해시 수산물 공동 브랜드로 사용된다고 한다. 묵호 수산물을 먹는다는 뜻으로 의미적으론 원산지인 묵호 바다를, 발음상으론 고양이를 나타내 생선을 연상시키도록 함으로써 소비자가 친근하게 받아들이게 한 것이 특징이다. 캐릭터를 이용해 지자체와 농수산물을 알리는 시도가 성공을 거두길 응원하며 어달항으로 향한다. 동해안의 시원스러운 분위기와 해안 절경들이 이어진다. 아직 해수욕장이 개장할 시기는 아니었지만, 일찍 찾아온 더위를 피하려는 여행객들은 항구 위 해수욕장에 몸을 던진다. 길고 넓은 해변은 아니어도 고운 모래사장을 가진 매력적인 해변이다. 어달항엔 바다 위 다리 공간에 묵호항 방파제와 무연탄 산적 시설, 항구 건설 등 옛 모습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는 아침 햇살 정원을 마련해 놨다.

망상 해변 조형물 [사진=김준철 기자]
망상 해변 조형물 [사진=김준철 기자]

펜션이 연달아 나오는 걸 보니 또 다른 해수욕장 초입에 다다른 신호다. 대진항과 대진 해수욕장이 맞닿아 있다. 대진항은 해파랑길을 걷게 되면 익숙해지는 항구다. 지난 영덕 코스에서도 대진항을 만났고, 삼척 코스에선 경유하진 않으나 이정표로 항구가 있음을 확인했다. 아직 도달하지 못했지만 고성에도 같은 이름을 쓰는 항구가 있다. 대진항을 그대로 풀이하면 큰 나루터라는 뜻인데, 동해시 대진항은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해안 바위 뒤로 방파제가 눈에 들어온다. 다른 항구보다 유난히 키가 작은 등대들이 설치돼 있다. 잠시 멈춰 해변 주위를 보니 배 모양으로 서핑숍과 카페를 꾸며 놨다. 대진 해수욕장이 서핑하기 좋은 해변이라 강습생들이 보드 위에 배를 깔고 허우적거리며 활기를 더한다.

길은 해변만큼이나 거대한 규모의 망상 제2오토 캠핑장으로 진입한다. 망상 해변을 기준으로 위쪽을 1·2 캠핑장으로 나눠 놓은 것을 보니 그 규모를 짐작케 한다. 넓은 공터에 수 십대의 카라반과 캠핑카가 주차돼 있다. 그야말로 광활한 망상 해수욕장으로 발을 옮긴다. 도가 지정한 국민 관광지로 북쪽 용바위에서 남쪽 대진 암초까지 너비 500m, 길이 5km의 좁고 긴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얕은 수심과 청정 바닷물, 울창한 해송 등이 잘 어우러져 장관을 만들어 낸다. 긴 해수욕장을 지나 북진하면 망상 해안 사구도 나온다. 잡초와 모래로 밖에 보이지 않는 걸 울타리를 쳐 보존하고 있어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안내 표지판을 보니 80여종의 동·식물이 살고 있는 자연의 보고라고 한다. 바람과 파도, 해류가 만든 구릉지인 해안 사구를 자연 식물원으로 보존하려는 노력도 인상적이다.

옥계항에서 바라본 도직 해변 [사진=김준철 기자]
옥계항에서 바라본 도직 해변 [사진=김준철 기자]

망상 해변을 돌아 빠져나오면 동해 엑스포 전시관과 컨벤션 호텔이 함께 자리한다. 도로와 해변 사이엔 다목적 구장이 있어 남녀노소 바다를 즐기며 골프와 게이트볼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동해선 철로 아래를 지나 7번 국도변으로 다시 올라가 길을 이어간다. 자전거길과 데크길을 공유해 편하게 바람을 맞으며 걷는다. 좌측 언덕과 우측 철로를 번갈아 보며 걷다 보니 동해시와 강릉시의 경계가 나온다. 강릉시 최남단의 간이 해수욕장인 도직 해변이 여행객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 도직이라는 뜻은 길이 곧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대진, 노봉, 망상, 기곡 해변에 이어지는 긴 모래 해변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해변이다. 걸어온 길을 복기하기 위해 몸을 돌려 카메라를 켜니 실제로 끝이 없는 백사장이 맑은 풍경을 그려낸다. 앞으로 다시 돌아서니 옥계항 방파제가 보인다. 삼척항, 동해항, 묵호항에 이어 옥계항에도 공장 시설이 있는 듯 하늘이 다소 뿌옇다.

7번 국도와 동해선, 고속도로는 모두 북쪽으로 옥계 읍내를 거쳐 강릉 시내를 향해 올라가지만, 해파랑길과 자전거길은 우측으로 꺾여 옥계 산업 단지 방향으로 뻗어 있다. 가로등이 새 모양으로 돼 있는 옥천 대교를 넘어서면 옥계 산업 단지로 들어선다. 옥천 대교 아래로 흐르는 강은 주수천으로 생계령과 절골, 황지미골에서 발원한 물이 학림에서 만나 동쪽으로 빠져나간다. 강릉은 과거 1차 산업 중심 도시에선 탈피했으나, 경제적 소득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산업 기반이 매우 취약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고 지역의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기반 조성이 필요해 옥계 지역에 산업 단지를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광포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자 옥계 해변 입구에 이른다. 길은 해수욕장으로 나가지 않고 금진 솔밭길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간다. 산책길을 천천히 걸으며 힐링하니 이번 코스의 종착지인 한국 여성 수련원이 나온다. 솔 숲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고, 솔향도 폴폴 풍겨 조금 더 힐링한 뒤 움직인다.

■ 35코스 : 5월 27일 강릉에서 새로운 천년을 기념하다(한국 여성 수련원 입구~정동진역 9.7km)

앞선 코스가 무난해 같은 날 호기롭게 한 코스를 더 걷기로 한다. 해당 코스는 강릉 바우길 9구간과 거의 일치해 바우길을 종주하는 여행객을 마주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한국 여성 수련원을 출발한 35코스는 금진리 마을길을 통해 금진 초등학교 방향으로 여행객을 이끈다. 다시 소나무 숲이 나와 시작 전 재충전을 마친다. 길이가 짧은 게 흠이라면 흠이다. 소나무 숲을 벗어나 헌화로란 해안길을 걷는다. 수로부인 이야기를 삼척에서 강릉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문화 자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금진항에서 심곡항까지 이어지는데 바다를 메워가며 만든 길이라 바다 바로 옆을 따라가며 바위 해안을 실컷 즐길 수 있고, 드라이브 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

헌화로를 따라 올라가면 금진 해수욕장이 나온다. 앞서 걸은 포항 월포 해수욕장이나 동해 대진 해수욕장, 곧 걷게 될 양양 인구 해수욕장만큼은 아니지만 서퍼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곳이라고 한다. 길가를 따라 서핑 숍이 드문드문 문을 열었다. 갑자기 날이 흐려졌는데도 일부 서퍼들은 물살을 가르는데 여념이 없다. 또 조용하고 아늑한 해변이라 한 번이라도 온 사람들은 해마다 다시 찾는 명소라고 한다. 금진항 방파제를 지키는 등대와 언덕 위에 세워진 금진 온천이 있는 건물도 보인다. 금진항은 강릉 남단의 작은 항구로 땅이 검고 조수가 드나들어 ‘먹진’, ‘흑진’이라 했는데, 1916년 행정 구역 변경으로 인해 금진이라고 이름 붙었다. 금진항은 어업을 주로 하는 항으로, 주요 어종으론 가지미, 넙치, 오징어, 청어 등이 많이 잡힌다고 한다. 시설이 낙후됐으나 1960~70년대 일반적인 항구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예전 항구 모습을 그리워하는 여행객 발길을 잡기엔 딱이다.

금진 해변 [사진=김준철 기자]
금진 해변 [사진=김준철 기자]

해안 드라이브 코스 옆 데크길과 산책길을 걷는다. 밀려오는 파도와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의 합주곡과 풍경들을 입을 벌린 채로 본다. 금진항에서 바다 부채길이 시작하는 심곡항과 정동진 방면으로 우회전해 길을 이어간다. 심곡항은 기암괴석 전시장이다. 독특한 바위들이 항구 입구에서 여행객을 맞는다. 파도와 바람이 빚어낸 바위에 한 번 놀라고, 바위 밑동이 보일 정도의 맑은 물에 또 한 번 놀란다. 깊은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라 심곡이라 불리는데, 실제 심곡항에서 내륙으로 이어진 골짜기를 따라 마을이 포근하게 자리하고 있다. 산줄기가 병풍처럼 마을과 항구를 감싼다. 항구를 정면으로 보고 있으니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흐린 하늘과 바닷바람이 운치를 더한다.

멀리 보이는 심곡항 끝자락엔 통행할 수 없도록 길이 막혀있다. 대신 길을 심곡마을로 향해 산으로 가는 통로로 만들어 놨다. 정동진으로 올라가는 울창한 숲속 길은 가파른 경사로 지그재그로 어렵게 이어진다. 마을 뒷산을 넘어가는 오솔길은 경사가 있지만 콘크리트로 포장해 놓아 오르기엔 무리가 없다. 오솔길을 통해 올라가면 평평하고 넓은 고원 지대를 만난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곳을 벗어나 헌화로를 걷는다. 하지만 내리막은 잠깐이다. 다시 삿갓봉을 향해 오르막 숲길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앞선 숲길보다 경사도 급하고 비도 떨어져 체력 소모가 갑절이다. 그래도 내륙 쪽으로 보이는 기마봉-외솔봉-삿갓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제법 장엄하다. 최고 높은 능선 이정표인 삿갓봉 삼거리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휴식하다가 하산을 서두른다.

모래시계 공원 대형 모래시계 [사진=김준철 기자]
모래시계 공원 대형 모래시계 [사진=김준철 기자]

산에서 내려오는 길부터 다시 하천과 동해가 보이기 시작하고, 등산길을 전부 내려왔을 땐 정동 119지역대로 들어오는 소방차가 보인다. 정동진이란 이름은 광화문의 정동방이란 의미다. 지난 32코스에서 광화문의 정동방은 정동진, 남한산성의 정동방은 추암 해변이라고 예습한 내용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순간이다. 정동진 해변은 1995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모래시계’ 촬영지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해돋이 관광열차가 운행되며 전국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해 사시사철 관광객이 모여들고 있다.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정동진역 앞바다, 모래시계 공원 앞 바다, 정동진 방파제 근처로 세 곳이나 된다.

코스 후반부인 모래시계 공원으로 넘어간다. 모래시계 공원은 2000년 새천년 밀레니엄을 기념해 1999년 조성된 공원으로 정동진 해변과 이어져 있고 역과 가까워 접근성도 좋다. 공원 안 큼지막한 모래시계가 있는데, 모래 무게만 8톤에 이르는 세계 최대 크기다. 시계 속 모래가 모두 아래로 떨어지는 걸리는 시간은 1년으로, 모래가 모두 떨어지고 나면 반 바퀴 돌린다고 한다. 방문했을 때 아직 반년이 지나지 않아 위쪽의 모래가 더 많다. 공원 내 해시계와 석탑 등 다양한 조형물이 있어 단조로움을 덜고, 기차 모양을 한 시간 박물관에선 독특한 전시 공간을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 여행객들은 걸음을 늦추고 사색에 잠긴다. 시간과 관련된 곳에 머무르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해 보는 듯하다. 깊은 생각을 하며 길을 이어가니 목적지인 정동진역이 금방 나온다. 하루에 두 코스를 걸은 탓인지 피로가 몰려와 역사는 다음 코스에서 찬찬히 둘러보기로 한다.

■ 36코스 : 5월 28일 괘방산의 참맛(정동진역~안인 해변 9.7km)

정동진역은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해돋이 명소다. 과거 역사 안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고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도 자유로웠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플랫폼으로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발권해야 되고, 역구내에서 바다로 가는 길도 레일 바이크 도로가 자연스러운 울타리 역할을 한다. 일출 시간에 맞춰 여정을 시작하려 했으나 밤새 내린 비로 해무가 짙게 껴 둥근 해가 떠오르는 건 보기 힘들다. 아쉬움은 역구내 조형물과 스토리가 채운다. 특히 드라마 모래시계 주인공이었던 탤런트 고현정씨의 이름이 붙여져 ‘고현정 소나무’라고 불리던 ‘모래시계 소나무’가 포토 스폿으로 버티고 있다. 모래시계 소나무뿐만 아니라 다른 소나무들도 바닷바람을 맞아 모양이 보기 좋게 자랐다.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소나무 앞에서 사진 찍으며 모래시계 소나무가 된 배경을 설명한다고 한참을 조잘댄다.

역사를 구경하고 대부분 여행객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번 코스는 9.7km밖에 되지 않지만 험난한 산길로 해파랑길 전체 코스 중 난도가 가장 높다고 악명 높기 때문이다. 지난 34코스 종착지에서 고성에서부터 남진해 온 여행객을 만나 이번 코스 후기를 들었다. 여행객은 다시 생각조차 하기 싫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가능하다면 우회하라고 신신당부하며 길을 떠났다. 35개 코스를 걸으며 몇 차례 고된 산행으로 이젠 무뎌질 때도 됐지만 악플과 가까운 후기가 여행객 발걸음을 주저하게 만든다.

정동진 역사 소나무 [사진=김준철 기자]
정동진 역사 소나무 [사진=김준철 기자]

그러나 앞선 코스에서 연달아 해안길을 밟았고, 체력 증진을 위해서 마음을 굳게 먹는다. 산 높이가 339m로 높지 않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괘방산은 옛날 과거에 급제하면 산 어딘가에 두루마기에 급제자 이름을 쓴 방을 붙여 고을 사람들에게 알렸다는데서 산 이름이 유래한다. 아울러 산 모양이 고양이처럼 생겨 ‘괴봉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등산로 입구엔 안보 체험 등산로 표시가 있다. 1996년 발생한 강릉 무장 공비 침투 사건이 계기가 돼 설치된 등산로다. 안인 해변에 북한 잠수정이 내려와 국군에 섬멸된 적이 있는데, 해당 사건을 상기시켜 주는 길이다. 등산로 초입부터 경사가 심하다. 심지어 안개가 자욱해 등산객은 물론이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헉헉거리며 꽤 오랜 시간을 걸은 덕분인지 산 능선에 이르고 183봉이라 불리는 작은 봉우리를 지난다. 36코스는 강릉 바우길 8구간 ‘산우에 바닷길’과 함께 한다. 우회해 바닷길을 걸을 걸 하는 후회가 서서히 몰려오기 시작할 시점이다.

그래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돼 적절하게 휴식을 하는데 어려움은 없다. 코스 중간 평지가 나와 숨을 돌리는 중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다. 자그마한 건물이 보이는데 바로 ‘당집’이다. 당집은 괘방산 아래 해안에 살던 어민들이 무사 조업과 풍어를 기원하는 곳이다. 작은 창고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주위가 돌담과 돌탑으로 둘러싸여 있어 무당집처럼 보이기도 한다. 당집 안에서 누군가 주문을 외우는 듯한 기이한 소리가 나온다. 실제 목소리인지, 녹음하는 걸 튼 것인지 헷갈려 주위로 다가가 본다. 하지만 나뭇잎을 스치며 흙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나무 냄새, 안개와 맞물리니 순식간에 오금이 저리고 식은땀이 나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도망치듯 발걸음을 빨리한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움직인 덕분인지 괘방산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전망이 좋은 편은 아니다.

괘방산 돌탑 [사진=김준철 기자]
괘방산 돌탑 [사진=김준철 기자]

정상에서 내려와 삼우봉을 향해 길을 이어간다. 잠깐의 내리막 후 다시 완만한 오르막이 길게 이어진다. 삼우봉과 활공장 전망대에선 안인 해변과 강릉항 등이 한 눈에 조망되고, 동해의 기다란 수평선이 펼쳐지는 환상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고 하는데, 해가 중천에 떴음에도 불구하고 안개가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활공장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산성터가 있다. 고려 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괘방산성 일부로 중간중간 손으로 쌓아 올린 듯한 돌더미와 돌계단이 놓여있다. 산성터를 걷다 보니 옛날 외적들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이 길을 걸은 선조들 모습이 오버랩된다.

3시간가량 등산 후 안인항 방향으로 가벼운 하산길이 나타난다. 오르막과 내리막은 하늘과 땅 차이로 다가온다. 내리막 중간 브레이크를 건다. 괘방산에 무너질 뻔한 마음을 다잡고, 축축해진 옷을 말리며 재충전한다. 완만한 내리막길이 소나무 숲 사이로 이어진다. 괘방산 마지막 전망대에선 서서히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바다를 따라 난 도로와 건물이 반가워 내리막을 가속해 내려간 탓인지 만신창이가 된다. 저린 무릎과 발목을 부여잡고 이번 코스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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