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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투어] ⑫삼척 하천과 바다, 구석구석의 매력을 느끼다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3.06.20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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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마다 걷기 여행을 하고자 합니다. 요즘 걷기 여행이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충 둘러보고 돌아서는 관광은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모든 감각을 통해 직접 수집된 오감만이 유일하게 진정한 관광으로 여행자를 인도합니다. 길 위에서 게으르게 움직이며 풍경과 세상사를 느껴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사유하고 재발견하고자 하는 여행자의 수요도 점차 늘어나는 중입니다. 천천히 구석구석 걷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여행이 주는 선물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편집자 주>

[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해파랑길’은 우리나라 동서남북을 잇는 코리아 둘레길의 동해안 구간으로, 부산광역시 오륙도 해맞이 공원을 시작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750km의 장거리 걷기 여행길이다. 해파랑이라는 명칭은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라는 조사 ‘랑’을 조합한 합성어로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 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지난해 4월 ‘2021 걷기 여행 실태조사’를 발표했는데 해파랑길이 2021년 걷기 여행자가 선택한 국내 걷기 여행길 중 2위로 꼽혔다. 만족도 면에선 97.3%의 이용자가 여행에 만족했다고 응답했다. 방학, 휴가, 연휴 등을 맞아 해파랑길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몰려들 정도로 그 인기는 엄청나다. 참고로 1위는 ‘제주올레’다.

해파랑길 삼척·동해 구간 [사진=두루누비 홈페이지 캡처]
해파랑길 삼척·동해 구간 [사진=두루누비 홈페이지 캡처]

■ 29코스 : 3월 31일 둑길과 산길, 고갯길을 지나다 (호산 버스 정류장~용화 레일바이크역 18.3km)

이른 아침이지만 출발지인 호산 버스 정류장은 벌써 시끌벅적하다. 조그만 플랫폼에 어르신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까닭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여행객을 붙잡고 안부를 묻는가 하면, 등산객 무리를 보고 정겹게 맞는다. 시골 특유의 에너지를 받고 발을 뗀다. 호산교를 넘어 호산천 둑방길을 따라 걷는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고 옆으로 강과 산이 보여 에너지 레벨을 유지한 채 걸을 수 있다. 호산천변을 계속 걷다 보면 호산리를 벗어나 옥원리로 들어간다. 마을비와 이천 폭포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길은 공사 중인 동해선 원덕역을 돌아간다. 포항과 삼척을 잇는 동해선은 올해 말 개통 예정이었으나, 철도 시설물로 인한 통행 단절 문제 등이 겹치며 1년 연기됐다. 빨리 개통돼 해파랑길을 걷는 여행객에게 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공사 현장을 지나면 짧은 능선을 올라야 한다. 오르막길 전 왼편엔 옥원 정수장 시설과 부속 건물이 있다. 숲이 우거진 능선을 넘어 임도를 걷고, 개울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자 다시 차도가 나온다. 수릉 삼거리 근처 소공대비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들어가는 길이 험할뿐더러 거리도 멀다. 지난 코스에서 소공대비 배경을 알아본 터라 실제를 보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다.

비화항 초입 [사진=김준철 기자]
비화항 초입 [사진=김준철 기자]

주변을 돌아보며 국도를 밟는다. 작진 삼거리는 작진항으로 가는 길이었지만 작진항은 남부 발전소 개발과 발전 단지의 매립 때문에 더 이상 어항으로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항구와 어촌 마을 역시 사라진 지 오래라는 후문이다. 해변 위 언덕을 따라 난 국도는 계속해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한다. 멀리 노곡항이 숲 사이로 조망되고, 작진·노곡 삼거리에 이어 비화 삼거리가 나온다. 비화항은 삼거리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해안이 반달 모양으로 보인다. 북쪽으론 임원항이 가까이 보이고, 남쪽으론 작은 산이 막혀 바다밖에 보이지 않지만 갯바위 낚시를 즐기기에 좋은 곳으로 알려졌다. 다른 고기잡이 항구처럼 어선이 정박할 수 있는 시설도 없고 어촌이 형성되지도 않았기에 조용하고 아늑하다.

임원항으로 이어지는 삼척로는 7번 국도와 함께 한다. 항구와 가까워질수록 다양한 구조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듯한 소공원엔 세계 잼버리 기념탑이 세워져 있고, ‘88 서울 올림픽 성화가 달린 길’이라는 기념 표지석도 함께 한다. 조금 더 북진하면 임원천이 나란히 이어지는데 얕은 하천 변엔 갈매기 떼가 쉬고 있다. 비화항 언덕부터 보인 독특한 구조물은 임원항 구석에 위치해있다. 가까이 가보니 남화산 중턱으로 연결된 51m의 엘리베이터로 수로부인 헌화 공원으로 가는 지름길인 셈이다. 이번 코스는 공원을 관통하진 않으나, 호산 버스 정류장에 모여 있던 어르신들 얘기론 유명한 스폿이라고 한다. 산책길에서 삼국유사 설화의 한 주인공인 수로부인과 천연오색 대리석 조각상이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임원항 [사진=김준철 기자]
임원항 [사진=김준철 기자]

임원항은 ‘ㄷ’자 모양의 항구다. 임원천 건너편 여러 횟집과 건어물 직판장 등이 몰려 있고, 그 뒤로 임원 방파제가 항구를 감싸는 모습이다. 벌써 식사 시간이 된 듯 임원항 근처 식당에서 사람들이 배를 두드리고 이를 쑤시며 나온다. 항구 근처답게 횟집이 줄지어 있고, 강원도 특산물인 감자를 이용한 전문 식당도 몇몇 보인다. 읍내를 벗어나면 임원1교를 통해 하천을 넘은 뒤 데크길을 걷는다. 임원천 데크길은 벚나무가 화려한 산책로로 유명하다. 기자도 시기 맞춰 간 덕분인지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구경할 수 있었다. 보통 평지로 된 데크길을 걸을 땐 속도를 높이곤 하지만 벚꽃 가까이 코를 대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카메라 각도를 돌려 렌즈에 봄을 담아본다. 푸른 산과 맑은 물, 공기가 한 곳에 어우러져 무릉도원과 다름없다.

경치가 좋은 덕분인지 휴식 없이 하천을 밟게 된다. 하지만 데크길이 끝나고 검봉산 자연 휴양림 입구를 지나선 조금 가파른 고개를 지나야 한다. 검봉산은 산 정상부에 칼을 꽂아 놓은 것처럼 보여 ‘칼코딩이’라고 불렀으며, 이것을 한자로 표현한 게 지금의 이름으로 불린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기 시작하니 숨이 가빠온다. 검봉산 자연 휴양림이 산불 방지 기간에 통행 금지돼 2015년 2월 노선이 대폭 변경됐다고 한다. 본래 코스였다면 벌써 체력이 고갈됐으리라 생각하며 속으로 노선을 바꿔준 담당자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고갯길을 30분 정도 걸어야 능선 마루인 아칠 목재에 도착한다. 과거 이 고갯길은 숲이 울창해 산적과 호랑이가 자주 출몰했다고 한다. 따라서 주민들은 아래쪽 주막에서 여러 명이 모이길 기다렸다가 함께 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산적이나 호랑이가 나타날지 몰라서 아찔한 마음으로 넘어 다녔다고 해 아칠 목재라 불렀다고 한다.

임원천 데크길 벚꽃 [사진=김준철 기자]
임원천 데크길 벚꽃 [사진=김준철 기자]

아칠 목재 꼭대기를 기점으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튼튼한 철골과 돌로 만든 사방댐이 이채롭다. 내리막길이 끝나면 용화천을 따라 길을 이어간다. 여기도 하천을 따라 듬성듬성 벚꽃이 펴 꽃냄새가 솔솔 풍겨오고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귀니 절로 힐링이 된다. 종착지는 용화 레일바이크역으로 잡혀있으나 지도 GPS는 용화교 앞을 가리킨다. 용화교로 가 뒤쪽을 바라보니 멀리 용화 레일바이크역이 보인다. 근처 용화 해수욕장으로 나가 바닷바람을 쐬며 코스를 마무리한다.

■ 30코스 : 4월 1일 삼척이 자랑하는 레일바이크 (용화 레일바이크역~궁촌 레일바이크역 7.1km)

이번 코스는 철도를 따라가는 레일바이크를 타고 진행 가능하다는 점이 독특하다. 그러나 바이크를 타면 코스를 정확하게 따라 밟기란 어렵다. 또 바이크는 1인승 없이 2인승과 4인승으로만 이뤄져 있다. 아무리 여행객 눈치를 보지 않고 트래킹을 즐기는 게 여행의 묘미라곤 하지만 기자가 코스를 방문한 시기가 절묘하게도 피크닉 철 주말이었다. 친구, 연인, 가족 무리에서 혼자 바이크를 밟는 것만큼 청승맞아 보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해 묵묵히 도로를 따라간다. 해상 케이블카, 레일바이크,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진 해변까지 볼거리와 놀거리가 풍부한 덕분인지 용화리 마을 골목 사이사이엔 민박과 펜션, 캠핑장이 즐비하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넓은 삼척로를 오른다. 고갯마루에 정자가 놓여 있어 숨을 돌리는 동시에 시원한 경치를 만끽한다. 용화 해수욕장의 푸른 바다가 탁 펼쳐지고 모터보트가 물살을 가르며 그림을 그린다. 시선을 조금만 더 멀리하면 장호리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잔잔한 물결과 언덕에 자란 꽃들이 바람에 흔들려 바다를 살짝 가리는 장면 또한 매력적이다. 더불어 용화 해변은 스노클링으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물이 맑고 깨끗하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다. 용화 방파제 옆 하얀 다리가 스노클링 포인트로, 여름철이면 피서객이 떼로 모이는 곳이다.

용화 해수욕장 [사진=김준철 기자]
용화 해수욕장 [사진=김준철 기자]

용화재 쉼터를 지나니 코스 목적지인 궁촌 레일바이크역과 중간 지점인 황영조 기념 공원 표지판이 길을 안내한다. ‘몬주익 영웅’ 황영조는 1970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나 삼척에서 중학생 시절까지 보냈다.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재학 중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한국인으로선 1936년 손기정 이후 56년 만에 금메달을 땄다. 당시 바르셀로나 주 경기장 서쪽의 급경사 코스인 몬주익 언덕에서 마지막 스퍼트로 2~3위권과 차이를 크게 벌리고 1위로 골인한 뒤 쓰러진 일화로 인해 몬주익 영웅이라 불리기도 한다. 삼척시는 황영조 선수의 인간 승리 과정과 우승의 감격을 기리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용기와 꿈을 심어주기 위해 기념 공원을 조성했다. 공원 초입 황영조 기념관이 있어 잠시 구경한다. 황영조 선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담긴 사진과 메달, 영광의 순간을 담은 영상 등이 전시돼 있다.

전시장을 나와 공원을 찬찬히 둘러본다. 기념탑은 커다란 지구본 위에 황영조 선수가 결승점을 통과하는 장면을 재현해 놨다. 그 옆엔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하는 모습의 비석과 도종환 시인의 ‘그는 파도처럼 달렸다’는 시비를 세워놓아 마라톤의 역동감을 느끼게끔 했다. 기념탑 뒤엔 황영조 선수의 어릴 적 집을 찾기 위한 시설이 지어져 재미를 더한다. 동그란 틈에 얼굴을 내밀어 보면 오륜기가 그려진 집 한 채가 보인다. 그의 이름을 따 ‘삼척 황영조 국제 마라톤 대회’가 올해로 벌써 27회째를 맞았다는 걸 보면 삼척에서 황영조 선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새삼 느낄 수 있다.

황영조 기념 공원 동상 [사진=김준철 기자]
황영조 기념 공원 동상 [사진=김준철 기자]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면 초곡항이 나오고 바로 문암 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항구와 해수욕장길이 낮은 담으로 분리돼 바닷물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다. 부산 오륙도부터 삼척까지 약 472km를 지나와 데이터베이스가 상당히 많이 쌓였는데, 이보다 물이 맑은 해변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푸르다 못해 투명하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바닥 밑까지 보인다. 이 때문인지 많은 여행객이 모두 신발을 벗어 던지고 심지어 어린 아이들은 바지까지 벗고 다리를 물에 담근다. 대한불교조계종 세은정사 입간판에 있는 삼존미륵불 사진을 보고서 바닷가에 있는 바위를 자세히 살펴본다. 정확한지 모르겠으나 부처를 닮은 바위가 누워 있다. 살짝 고개를 숙여 반절한 뒤 힐링 중인 여행객들을 다시 구경한다.

해파랑길은 이제 레일바이크길을 따라간다. 황영조 기념 공원 초입 길을 가로지르는 철길엔 개미 한 마리 없을 정도로 고요했는데, 시간이 지난 까닭인지 드문드문 바이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일제 강점기 삼척 지역에서 나오는 지하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삼척에서 포항까지 철로가 개설됐다가 광복이 되면서 폐철로로 방치된 것을 삼척시가 관광 자원화하기 위해 2010년 사업이 시작됐다. 철로변 소나무가 그 세월을 대변하듯 우람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다. 소나무 숲 사이로 이어진 철로를 보면 학창 시절 미술 시간 원근법을 배울 때 예제 사진이 생각난다. 그만큼 일자로 쭉 뻗어있어 홀려들어 갈 정도의 오묘함이다. 바이크가 다니지 않을 때 교차로로 잠시 들어가 사진을 하나 남긴다.

원평 해수욕장 조형물 [사진=김준철 기자]
원평 해수욕장 조형물 [사진=김준철 기자]

열심히 코스를 밟아와 벌써 코스 막바지로 향한다. 원평 해수욕장과 궁촌 해수욕장이 경계 없이 맞닿아 있다. 원평 해수욕장은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 야영을 하며 즐기는 물놀이 피서객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적정한 거리를 두고 조형물도 있어 사진 찍기도 적절하다. 원평 해수욕장에서 이름 없는 다리를 건너면 궁촌리로 넘어간다. 마을에 들어서니 주민들이 해조류 건조 작업에 여념이 없다. 마을 골목길을 오르자 깔끔하게 단장돼 관광객을 맞이하는 궁촌 레일바이크역이 보인다. 정거장 앞 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도 가족 단위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 31코스 : 4월 1일 마읍천 따라 맹방으로 (궁촌 레일바이크역~맹방 해변 입구 9.6km)

이전 코스가 7.1km로 산책하듯 가뿐히 걸었고, 이번 코스도 9.6km로 큰 부담이 없어 하루에 두 코스를 마무리하는 즐거움도 누린다. 궁촌 레일바이크역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상상 이상의 인파가 바이크를 기다리고 있다. 끝없는 기다림에 지칠 만하지만 역 광장엔 조각상을 많이 만들어 놓고 꽃나무도 많이 심어놓아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기엔 충분하다. 역 주차장을 빠져 나와 차도를 걷는다. 궁촌리에서 동막리로 길이 이어지는데 완만한 내리막길이 해안으로 인도한다. 궁촌리는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이곳을 비운의 역사로 부르는 이유는 공양왕이 살해된 곳이기 때문이다. 궁촌리 뒤 고개 이름을 사래재라고 부른다. 본래 이름은 공양왕이 이성계가 보낸 금부도사에 의해 살해된 장소라 해 살해재라고 불렸다고 한다.

사래재를 넘고 동막교를 건너면 이젠 마읍천을 따라 동해로 나간다. 지난 코스 초곡항이 해파랑길에 인접한 바다 중 가장 맑다고 하면, 마읍천은 하천 중 가장 맑은 물을 자랑한다. 삼척시 서금산에서 발원해 상마읍리, 중마읍리, 하마읍리, 동막리, 부남리를 지나 근덕면 덕산리에서 동해로 유입되는 지방 하천이다. 하류 쪽이라 폭도 넓고 민가, 공장, 농경지와 인접해 있어 맑은 물을 자랑하기란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풍경이다. 심지어 모래마저 곱다. 하천 하구에 있는 맹방 해변과 덕산 해변의 모래들도 마읍천이 운반해서 퇴적시킨 물질들이라고 한다.

삼척 해양 레일바이크길 [사진=김준철 기자]
삼척 해양 레일바이크길 [사진=김준철 기자]

마읍천을 따라 걸으면 7번 국도 아래를 지나며 부남리로 넘어간다. 근처 축사가 있는지 꼬릿꼬릿한 냄새가 풍겨온다. 날숨을 크게 쉬며 산과 하천을 구경하며 가는데 한 순간 참을 수 없는 분뇨 냄새가 진동한다. 냄새의 진원을 따라가 보니 돼지 축사다. 냄새가 너무 심할 땐 숨을 잠시 멈추고 발걸음을 빨리해 본다. 더 이상 냄새가 나지 않자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살핀다. 모래톱과 갈대밭을 품고 있는 하천은 보고만 있어도 귀중하고, 하천 좌우를 둘러싼 산은 웅장하다.

또 하천을 따라 엄청난 평야가 펼쳐진다. 강원도의 농사라고 하면 감자나 옥수수 등 구황작물이나 배추 등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청보리가 깔린 걸 보니 곡물 경작도 가능한 모양이다. 산과 숲에서 보는 초록 빛깔과 달리 쨍한 초록색이 발 아래 깔려 있어 눈이 정화된다. 논 한 가운데 쉼터로 정자가 놓여 있어 정겨운 시골 풍경을 만든다. 늦가을이 되면 황금 벌판으로 바뀔 멋진 모습도 상상해 본다. 부남교를 건너 반대편 하천 둑을 따라간다. 지도에 재동 유원지가 표시돼 있으나 하천 건너편에 있는지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부남 마을 소나무 세 그루가 멋진 모습을 뽐내며 여행객을 맞는다.

궁촌 레일바이크역 [사진=김준철 기자]
궁촌 레일바이크역 [사진=김준철 기자]

조금 더 북진하면 또 한 번 놀랄만한 길이 펼쳐진다. 한동안 넓은 평야를 걸었는데 좁은 길의 오밀조밀한 풍경이 펼쳐진다. 지난 29코스 임원천 데크길처럼 길이 일자로 쭉 뻗어있고 양 옆으로 벚꽃이 만개해 있다. 인파가 몰린 것도 이때부터다. 젊은 커플이 한껏 멋을 내고 셀카를 찍는가 하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들도 아이를 번쩍 들어 벚꽃 구경을 시킨다. 벚꽃길뿐만 아니라 ‘길게 뻗은 산책로’로 가로등도 있고 중간중간 벤치도 있어 쉬어가기도 좋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속도를 늦추고 꽃비를 맞으며 아름다운 길을 만끽한다.

마읍천 하구엔 8·29 기념 공원이 자리한다. 2019년 8월 29일 원전 건설을 막아낸 것을 기념해 이곳에 원전 백지화 기념탑과 비를 추가해 세웠다. 40년 동안 근덕면 지역이 원전 지정과 철회를 두 번씩이나 반복했다고 한다. 기념비엔 삼척시민들이 자연 경관을 지키기 위해 핵발전소 건설을 막아낸 투쟁과 상처, 승리의 역사를 담았다. 공원을 지나면 왼쪽으로 돌아 덕봉대교를 건너 길을 이어간다. 마읍천 하구 끝 작게 솟은 언덕이 덕봉산이다. 산 주위로 데크길이 마련돼 있어 덕산리 쪽에서 접근할 수 있고, 다리를 건너 맹방 해변에서도 접근 가능하다. 2021년 ‘해안 생태 탐방로’라는 이름으로 개방돼 TV 예능이나 다큐멘터리 등에도 종종 방영된 곳이다.

마읍천 [사진=김준철 기자]
마읍천 [사진=김준철 기자]

짧은 무궁화 가로수길을 지나면 맹방 해수욕장에 도착한다. 아직 해수욕 철도 아닌데 여행객이 붐비고 입구는 공사 중이라 부산스럽다. 맹방은 부드러운 모래밭이 끝없이 펼쳐진 ‘명사십리(明沙十里)’로 잘 알려져 있다. 하얀 모래밭, 푸른 바다. 울창한 송림 등 많은 여행객의 추억 여행지로 남을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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