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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투어] ⑪바다 바람을 뚫고 강원도로 한 걸음 한 걸음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3.05.2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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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마다 걷기 여행을 하고자 합니다. 요즘 걷기 여행이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충 둘러보고 돌아서는 관광은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모든 감각을 통해 직접 수집된 오감만이 유일하게 진정한 관광으로 여행자를 인도합니다. 길 위에서 게으르게 움직이며 풍경과 세상사를 느껴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사유하고 재발견하고자 하는 여행자의 수요도 점차 늘어나는 중입니다. 천천히 구석구석 걷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여행이 주는 선물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편집자 주>

[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해파랑길’은 우리나라 동서남북을 잇는 코리아 둘레길의 동해안 구간으로, 부산광역시 오륙도 해맞이 공원을 시작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750km의 장거리 걷기 여행길이다. 해파랑이라는 명칭은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라는 조사 ‘랑’을 조합한 합성어로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 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지난해 4월 ‘2021 걷기 여행 실태조사’를 발표했는데 해파랑길이 2021년 걷기 여행자가 선택한 국내 걷기 여행길 중 2위로 꼽혔다. 만족도 면에선 97.3%의 이용자가 여행에 만족했다고 응답했다. 방학, 휴가, 연휴 등을 맞아 해파랑길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몰려들 정도로 그 인기는 엄청나다. 참고로 1위는 ‘제주올레’다.

해파랑길 울진 구간 [사진=두루누비 홈페이지 캡처]
해파랑길 울진 구간 [사진=두루누비 홈페이지 캡처]

■ 26코스 : 다양한 공원과 해안길 (수산교~죽변항 입구 12.7km)

왕피천에서 나온 강물이 수산교와 왕피천대교를 훑고 동해로 나간다. ‘왕피(王避)’라는 지명은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피신했다는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삼국시대 이전 삼척과 울진 지역을 지배하던 실직국의 왕이 강릉 지역을 지배하던 부족 국가 예에 쫓겨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유력하다. 아무튼 피난처로 사용될 만큼 골이 깊고 길이 험하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다. 하지만 하류라 그런지 시야가 넓게 뚫려있고, 왕피천 공원을 만들어 녹지를 조성해 놨다. 시간이 이른 까닭에 주민들과 여행객은 많지 않지만 다양한 조형물이 반기고 산 위로는 케이블카가 다닌다. 강둑으로 이어지는 길은 울진 엑스포 공원과 아쿠아리움 정문으로 향한다. 이제서야 어린 아이들이 구경하기 위해 무리를 지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강을 건너가기 위해 만들어진 다리 위 이상한 조형물이 얹혀 있다. 바로 울진의 명물이 된 은어 다리다. 해가 떠 있을 때 다리를 건너 인지하지 못했으나, 일몰 이후 빛이 반사돼 반짝이는 교각을 볼 수 있다는 후기가 많다. 실제 왕피천과 남대천 근처는 산란철 회귀하는 은어 떼로 유명한 곳이다. 울진군도 2008년부터 왕피천 유역 생태 공원화 사업 및 하천 정화 사업 등을 실시해 은어 등 회귀성 어류의 보전을 위해 노력 중이다. 다리 중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닥이 훤히 비친다. 은어 몸속을 두 번씩 들어갔다 나와야 완전히 다리를 건너게 된다. 은어 입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남기기 위해 뒤를 도니 먼 산마루에 있는 망양정이 보인다. 정자와 바다, 하천, 다리가 잘 어우러지는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왕피천 공원 [사진=김준철 기자]
왕피천 공원 [사진=김준철 기자]

코스 초반 공원 행렬이 계속된다. 울진대교를 넘고 수변을 계속 걸어가면 연호 공원이 나온다. ‘연호(蓮湖)’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연꽃이 많은 호수다. 실제로 호수 위에 푸른 연잎이 둥둥 떠 있는 걸 목도할 수 있다. 특히 이곳은 남대천과 연결돼 생성된 배후 습지 성격을 갖고 있어 인위적으로 만든 호수와 다르다. 읍내와 맞닿아 접근성이 좋은 덕분인지 어르신들이 무리를 이뤄 산책하고 있다. 이들의 속도에 맞춰 연호를 한 바퀴 돌며 상쾌한 공기를 마신다. 공원 뒤쪽에 있는 울진 과학 체험관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단순 관람 목적으로 만들어진 과학관이 아니라 해양 과학과 생명 과학을 쉽고 재밌게 경험할 기회를 제공해 과학 인재 양성에 기여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울진의 공원을 구경하고 나면 드디어 해변을 마주한다. 연호 북쪽 길을 통해 연지리길을 걷는다. 언덕을 넘어서며 해변길로 진입하면 거친 동해를 만난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곳의 겨울은 유독 춥다고 하는데, 이 말이 무색하지 않게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옷을 여미며 바다의 칼바람을 피해 본다. 거친 파도가 으르렁거리지만 갯바위를 때리며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도 인상적이다. 대나리항으로 가는 길의 방호벽 벽화의 쨍한 색감이 발길을 붙잡는다. 고래와 각종 해산물, 물질하는 해녀, 망망대해를 지키는 등대 등 바다와 어울리는 환상적인 그림들을 넋 놓고 감상해본다. 또 해변에 있는 크고 작은 바위들을 보며 형상에 따라 이름을 지어주며 가니 지루함도 덜 수 있다.

은어다리 [사진=김준철 기자]
은어다리 [사진=김준철 기자]

대나리항에서 양정항으로 가는 길에도 세찬 바람이 불어와 도로까지 파도가 튄다. 물을 피하려 걷다 멈췄다를 반복하니 시간이 지체된다. 양정항은 작은 항구지만 여행객들이 미항으로 손꼽는 곳이다. 갖가지 형상으로 바다에서 고개를 내민 갯바위들이 치명적인 자태를 뽐내고, 일출 땐 해가 바다를 때리며 다른 해안과 달리 짙고 옅음을 잘 표현한다는 말이 있다. 다만 양정항은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일부 포털 사이트에 온양 방파제라고 검색해야 함께 나오는 곳이다. 물론 배의 정박 시설이 없어 항구보다는 방파제로 보는 것이 더 어울리지만, 서정적인 해변과 파도 소리가 정겹기만 해 여행객이 생각하는 작은 항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정항을 지나 봉평리로 가는 길엔 데크길이 깔끔하게 깔려있다. 푸른 바다를 더욱 더 가까이에서 조망할 수 있는 길인데, ‘관동 팔경 녹생 경관길’이란 이름으로 조성됐다. 강원도 고성 대진 등대 일원부터 해안길을 따라 울진의 월송정까지 6개의 관동 팔경을 연결하는 도보길을 발굴·조성하기 위해 주위 7개 시·군이 상호 협력해 만들었다. 포항의 호미반도 해안 둘레길, 영덕 블루로드, 강릉 바우길 등처럼 해파랑길과 별도로 조성한 길이라고 한다. 테마길을 만드는 것은 좋으나, 양보다는 질을 우선시해 유지·발전시켜 여행객들의 만족도를 높였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해수욕장 앞의 방파제가 봉평 해수욕장에 다다랐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모래 해변이 초라해 어딘가 쓸쓸해 보인다. 봉평 해수욕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해안 침식으로 모래를 다수 잃은 대표적인 해수욕장 중 하나라고 한다. 지속적으로 연안 정비 공사 등이 이뤄지고 있으나 아담한 사이즈의 해수욕장이 옛 위엄을 되찾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대로 옆엔 죽변항을 잘 나타내는 대나무 조형물이 우뚝 서 있다. 이곳을 마지막 포토 스폿으로 잡은 다음 일정을 마무리한다.

양정항 [사진=김준철 기자]
양정항 [사진=김준철 기자]

■ 27코스 : 죽변항의 거친 바람과 이색 랜드마크 (죽변항 입구~부구삼거리 11.5km)

북진하는 도중 생뚱맞은 거목이 길을 지키고 있다. 바로 천연기념물 158호 울진 후정리 향나무다. 이 향나무는 수령이 무려 500년이나 될 정도로 동네 사람들의 신목(神木)으로 여겨진다. 전설에 의하면 울릉도에서 떠내려 온 나무라고 하는데, 해안 도로 옆에 있으면서도 푸른 잎을 자랑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제부턴 죽변리 시내와 항구가 연달아 펼쳐진다. 시내에서 잠시 목을 축이며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바다로 나간다. 죽변항은 국가 어항으로 수많은 낚싯배가 정박해 있다. 항구 바깥엔 파도가 거칠게 치고, 여전히 겨울 바람도 강하게 분다. 조업을 마친 어부들이 빠르게 수산물을 거두고, 주변 음식점 상인들은 큰 목소리로 호객한다. 수산 시장 경매는 새벽에만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오후에도 적은 인원이 모여 경매를 준비한다.

대나무 숲으로 이뤄진 데크를 따라 해변으로 올라간다. 항구 끝 해안 스카이 레일 승차장이 보인다. 죽변 해안 스카이 레일은 죽변 승하차장과 봉수항을 오가는 2.8km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모노레일로 여유롭게 자연 경관을 관람할 수 있고, 왼쪽엔 푸른 산, 오른쪽엔 뻥 뚫린 동해를 함께 끼고 가 마음의 평온을 찾는데 안성맞춤인 곳이다. 레일 바이크 선로 아래 오프로드를 밟으며 이를 구경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탑승객들은 차량 내에서 편하게 풍경을 즐길 수 있지만, 걷기 여행객들은 똑같은 풍경을 보는 동시에 탑승객 반응까지 살필 수 있다. 다시 깔끔하게 정비된 숲 속 산책길을 밟는다. 방금 비포장 도로에서 본 바다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매서웠으나 올라와서 보니 그저 넘실거리는 듯하다.

드라마 폭풍 속으로 어부의 집 [사진=김준철 기자]
드라마 폭풍 속으로 어부의 집 [사진=김준철 기자]

오르막길을 헉헉대며 올라가니 하얀 등대가 빼꼼 머리를 내민다. 1910년 울진 지역에 최초로 건립된 죽변 등대다. 죽변이라는 이름이 붙은 배경답게 등대 주변으론 조릿대가 무성하다. 또 죽변 등대는 동해안을 항해하는 선박의 뱃길을 인도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이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뿐만 아니라 어민들의 애환과 역사를 담고 있는 근대 문화유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전체적으로 벽면의 여러 선과 형태 요소들이 잘 조화돼 안정감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등대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해 지역 일반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는데, 대부분 해안 스카이 레일로 빠진 까닭인지 인파가 많진 않다.

‘용의 꿈길’이라고 이름이 붙은 산책로를 따라 나간다. 왜 이 길이 용의 꿈길이라 불렸는지 궁금했는데, 산책로 끝의 조형물에서 뜻을 살펴본다. 해안 암초 사이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죽변곶이 용의 꼬리처럼 생겨서 붙인 이름인 모양이다. 2004년 방영된 ‘폭풍 속으로’라는 드라마 세트장이 절벽 위에 멋지게 서 있다. 기자는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부모 세대에 물어보니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라고 한다. ‘어부의 집’이라고 세트장 이름을 붙였는데, 촬영지를 그대로 보전해 몇몇 소품이 그대로 남아있다. 산책길을 이어가다 보니 해안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해안 스카이 레일의 경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레일이 반원을 그리다 한번 꺾이고, 또 다시 반원을 그린다. 해안선이 하트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 하트 해변이라 불린다.

하트 해변과 죽변 해안 스카이 레일 [사진=김준철 기자]
하트 해변과 죽변 해안 스카이 레일 [사진=김준철 기자]

해파랑길은 등대길에서 좌회전해 죽변리 읍내로 안내한다. 읍내로 올라가는 길 양 옆은 높은 곳에 위치한 주택들이 있는데 바다 전망이 좋을 듯하다. 읍내를 떠나면 길은 숲길과 돌길을 잇는다. 상당한 오르막이라 숨을 고르며 천천히 길을 밟는다. 숲길을 지나니 여행객을 맞는 것은 넓은 들판이다. 눈에 들어오는 널찍한 풍경은 마음까지도 활짝 열어준다. 길은 비상 활주로를 가로질러 가야 한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걸 보니 공항이나 군사 목적으로 사용되는 공간으로 간주된다. 넓어진 도로를 만나 산모퉁이를 돌아 낮은 고개를 넘는다. 내륙 북쪽에 위치한 후정2리 마을 회관을 지나 낮은 고개를 넘는다.

바닷가와 멀어지며 칼바람은 잠잠해졌지만 이와 동시에 단조로운 차도가 나오며 볼 풍경이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점이 아쉽다. 고목리 하천변은 폐수 때문인지 악취가 가득해 얼굴을 찡그리고 숨을 참으면서 통과한다. 이후 나오는 울진북로는 통행량이 많은 곳이라 집중하고 구불구불한 길을 빠르게 벗어난다. 길 옆의 울창한 조릿대 숲 등이 있으나, 그 형색이 초라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한 탓인지 호흡이 일정하지 못하고 당도 떨어지는 느낌이다. 마지막 스퍼트를 향해 짐을 다시 꾸리고 마음도 다잡는다.

드디어 이번 코스의 막바지인 부구천에 도착했다. 다리를 건너기 전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에너지팜을 먼저 지나가야 한다. 배움의 공간이자 복합 문화 공간으로 우리나라 원자력 산업과 한울원자력본부의 원자력 발전 원리 등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공원 안쪽에는 울진 원자력 홍보관, 실내 스포츠 센터, 생태 공원 등 다목적 생활·문화 공간을 조성해 놓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라 홍보관은 닫혀 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제2부구교를 건너며 유유히 흘러가는 부구천을 바라본다.

부구교 [사진=김준철 기자]
부구교 [사진=김준철 기자]

■ 28코스 : 경상과 강원 경계에서 만난 숲길 (부구삼거리~호산 버스 정류장 10.9km)

오랜만에 보는 큰 시내다. 시작점에서 조금 북진하면 흥부시장이라고 하는 장도 보인다. 1919년 4월 13일 흥부장날 일어난 4·13 만세 사건으로 유명한 시장이다. 더불어 조선 말기 보부상들이 경상북도 봉화와 안동 등의 내륙 지방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경북 울진에서 생산되는 미역과 생선, 소금 등 해산물과 물물교환 하던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오일장인데 때를 잘못 맞춰 기존 점포 외 거리가 휑하기만 하다. 울진군 북면 부구리와 나곡리는 경북 최북단인 동시에 강원도와 맞닿은 곳이다. 그 때문인지 거리를 걸어가며 장사 준비를 하는 어르신들의 목소리에서 경상도 사투리도 아니고, 강원도 사투리도 아닌 생소한 말투를 들을 수 있다.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바다가 반겨준다. 해안의 기암괴석들을 감상해본다. 기암괴석을 때리고 부서지는 파도는 덤이다. 해변의 작은 바위섬 옆에 나무 몇 그루가 자라는 것도 신기하다. 이날은 10km 정도만 걸으면 돼 더욱 더 여유롭다. 본 코스를 이탈해 나곡 바다 낚시 공원으로 향한다. 깎아지는 절벽들이 빚어 놓은 풍경을 감상하기 좋을뿐더러, 갯바위와 암초가 발달해 낚시인들 사이에 명당으로 알려진 곳이다. 철조망 넘어 바다로 데크가 ‘T’자 형태를 그리며 쭉 뻗어 있다. 시간이 이른 까닭인지 낚시꾼이 없는 게 아쉬웠지만 데크에서 뻗어 나오는 낚싯대를 상상해 본다. 다시 본 코스로 돌아오는 경로에 목장이 있다. 도시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한우를 실제 두 눈으로 보는데 군침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은 바위섬 [사진=김준철 기자]
작은 바위섬 [사진=김준철 기자]

나곡리에서 가장 볼만한 스폿은 역시 나곡해수욕장이다. 물론 해수욕장 역시 이번 코스를 관통하진 않으나 거리가 가까워 구경하기에 적합하다. 백사장 길이가 약 300m인 소규모 해수욕장으로 여행객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크고 작은 갯바위가 한적한 바다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해변가에 조그만 자갈들이 깔려 바닷물이 깨끗하고 투명하게 보이며, 해안선을 낀 주변의 산이 해수욕장을 둘러싸고 있어 조용하고 아늑한 어촌이기도 하다. 그러나 얼마 전 사고가 났는지 진입을 막기 위해 폴리스 라인이 칭칭 감겨 있다.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며 먼 수평선을 보는 것만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코스는 7번 국도로 여행객을 인도한다. 도로변을 걷지만 자전거나 사람이 걸어갈 공간은 넉넉해 안전하게 트래킹을 이어갈 수 있다. 오르막을 천천히 올라가니 민가도 서서히 사라지고 산이 이어지는 풍경이 펼쳐진다. 줄기가 매끄러운 배롱나무(백일홍)를 보니 도화 동산이 가까워진 모양이다. 도화 동산은 2000년 4월 강원도에서 발생해 큰 피해를 준 동해안 산불을 민·관·군이 협심해 22시간 만에 진화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배롱나무를 심어 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본 이미지와 다르게 앙상한 나뭇가지 몇몇만 남았을 뿐이다. 물론 계절적인 요인도 있겠으나, 지난해 3월 울진군 북동부와 삼척시 원덕읍을 덮친 산불에 다시 소실됐다는 몇몇 보도도 있다. 산불 진화를 기념하기 위한 공원이 다시 산불로 탄 것을 보니 다시 한 번 자연의 힘을 실감할 수 있다.

경상북도와 강원도 경계 [사진=김준철 기자]
경상북도와 강원도 경계 [사진=김준철 기자]

도화 동산을 지나니 내리막길이 나오고 ‘평화와 번영 강원시대’ 강원도 표지판이 나온다. 부산광역시 오륙도에서 첫 코스를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강원도 진입은 먼 이야기로만 생각했는데, 경계선을 밟고 있으니 벅차오른다. 뿌듯한 마음을 갖고 고개를 돌리니 갈령재 자유 수호의 탑이 보인다. 1968년 울진, 삼척 지구로 침투한 무장 공비 사건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물이다. 해안 철책선이 많이 없어졌다곤 하지만 삼척 일대에 여전히 해안 철책이 남아 있는 게 그 증거다. 갈령재부터는 ‘삼척 수로부인’ 길이 시작된다. ‘지금 지나는 바다를 걷는 길’, ‘황희정승 만나러 가는 길’, ‘옛 이야기 속으로 길’이라는 3개의 코스로 이뤄져 있고, 각 코스에서 수로부인 설화를 살펴볼 수 있다.

풀이 무성한 마을 뒷동산의 등산로 입구를 오른다. 경북과 강원의 경계에서 만난 숲길은 신선함을 준다. 딱 숨이 가빠질 정도까지의 경사를 가진 산이다. 멀리 태백산맥의 능선이 나뭇잎 사이로 살짝 보이고, 푸른 하늘이 맞닿을 정도로 가깝다. 정상에선 시야가 탁 트이는데, 산 아래 풍경과 삼척 바다가 펼쳐진다. 아울러 한국가스공사(KOGAS) LNG 기지 본부 시설물과 바로 앞 밤섬이 조화로움을 더한다. 또 하나의 산을 내려오면 월천리 마을로 들어선다. 이 때부터는 가곡천의 데크길을 걷게 된다. 태백산맥에서 발원한 가곡천은 무려 43km나 흘러 동해로 나간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니 마음이 평화롭다.

호산 해변과 한국가스공사(KOGAS) 시설물 [사진=김준철 기자]
호산 해변과 한국가스공사(KOGAS) 시설물 [사진=김준철 기자]

표지판은 소공대비와 호산 버스 정류장을 가리키고 있다. 소공대비는 조선시대 세종 당시 명재상 황희에 얽힌 비석이다. 관동 지방에 대기근이 들어 수많은 사람이 굶어갔는데, 황희가 최선을 다해 어려움을 극복하게 됐다. 그러자 백성들이 그가 가끔 쉬던 장소에 단을 쌓고 소공대라 이름 붙여 그의 공적을 기린 것이 그 배경이다. 그곳까진 거리가 멀어 호산 버스 정류장에 삼삼오오 모여 세상사를 풀고 있는 주민들을 구경하며 코스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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