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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투어] ⑲고성 바다와 함께하는 시간 여행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4.02.26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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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마다 걷기 여행을 하고자 합니다. 요즘 걷기 여행이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충 둘러보고 돌아서는 관광은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모든 감각을 통해 직접 수집된 오감만이 유일하게 진정한 관광으로 여행자를 인도합니다. 길 위에서 게으르게 움직이며 풍경과 세상사를 느껴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사유하고 재발견하고자 하는 여행자의 수요도 점차 늘어나는 중입니다. 천천히 구석구석 걷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여행이 주는 선물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편집자 주>

[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해파랑길’은 우리나라 동서남북을 잇는 코리아 둘레길의 동해안 구간으로, 부산광역시 오륙도 해맞이 공원을 시작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750km의 장거리 걷기 여행길이다. 해파랑이라는 명칭은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라는 조사 ‘랑’을 조합한 합성어로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 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2022년 12월 ‘2022 걷기 여행 실태조사’를 발표했는데 해파랑길이 2022년 걷기 여행자가 선택한 국내 걷기 여행길 중 1위로 꼽혔다. 인지도 면에선 34.7%의 이용자가 해파랑길을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방학, 휴가, 연휴 등을 맞아 해파랑길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몰려들 정도로 그 인기는 엄청나다.

해파랑길 고성 구간 [사진=두루누비 홈페이지 캡처]
해파랑길 고성 구간 [사진=두루누비 홈페이지 캡처]

■ 47코스 : 12월 15일 전통민속마을과 송지호의 아름다움(삼포 해변~가진항 9.7km)

삼포 해변은 1977년 해수욕장으로 개장했으며 해변을 붉게 수놓는 해당화와 울창한 송림의 빼어난 경관이 자랑이다. 맞은편에는 흑도와 백도, 호미섬이 있어 바다 낚시터로도 잘 알려졌다. 배경으로는 앞으로 밟을 오호항과 죽도, 왕곡마을 뒷산인 두백산, 가진항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늦은 아침 머리 위 떠 있는 해와 찰랑거리는 해변은 힐링 그 자체다. 도로를 따라가다 백사장으로 들어서서 모래사장을 걸어보기도 하고, 다시 인도로 나와 지나온 방향에 있는 리조트와 해변을 돌아본다.

왼쪽으로 길을 꺾으면 야영장이 나온다. 오토캠핑장으로 캠핑카가 올라갈 수 있는 데크가 깔려있다. 코앞에 바다가 펼쳐지는 천혜의 명당이 따로 없다. 캠핑장 중간 봉수대 모양을 본뜬 화장실이 있다. 이를 보고 봉수대 해수욕장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다. 봉수대 해수욕장은 오랫동안 군사 시설 보호구역이었다가 해제돼 비교적 훼손되지 않은 청정 해변이다. 지난해 8월에는 ‘2023년 레저 스포츠 페스티벌’을 개최해 봉수대 해수욕장을 해양 레저 관광지로 육성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했다. 아름다운 해변을 잘 유지하면서 관광지로 키우는 만큼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송지호 [사진=김준철 기자]
송지호 [사진=김준철 기자]

7번 국도에서 오호항과 송지호로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 오호리 방면으로 이동한다. 오호리는 송지호, 금지호, 번개, 버덩개, 황포 등 호수 5개가 마을 주변에 있어 붙은 이름인데, 현재는 감탄사의 뜻으로 네이밍을 잘 활용하는 듯하다. 실제 봉수대 해수욕장 끝에 위치한 오호! VR 해양 모험관이 이를 증명한다. 오호리 포구 주변에는 높은 지대가 없어 포구와 바다 풍경이 납작하게 보여 해안선과 높이를 맞추고 광활한 바다를 촬영할 수 있다. 또 시기를 잘 맞춰 찾아오면 고등어나 도루묵이 많이 올라온다고 해 낚시꾼들의 갯바위 낚시 스폿으로도 인기다.

송지호 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 2km, 폭 100m에 물이 맑고 수심이 얕으며 죽도라는 바위섬이 있어 해안 경관이 수려하다. 이로 인해 강원 고성 8경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주변 연계 관광 여건이 좋은 곳으로 테마 여행지로도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고니 등 철새가 많다고 하는데, 겨울 철새도 깜짝 놀라게 할 추위 탓인지 백사장과 해안을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해변을 걸으며 앞바다 죽도를 바라본다. 큰 섬이긴 하나 거리가 있어 접근이 불가할 것이라고 보였는데, 인터넷 포털 사이트 후기를 읽어보니 고무보트로 접근해 배낚시, 그물잡이 체험이 가능하다고 한다.

왕곡마을 [사진=김준철 기자]
왕곡마을 [사진=김준철 기자]

공터를 지나 북진하면 송지호가 나온다. 송지호는 동해안의 대표적인 천연 석호 중 하나로, 화진포 다음으로 남한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동해안 호수가 대부분 그렇듯 송지호도 담수와 바닷물이 만나는 곳으로 바닷물고기와 민물고기가 함께 서식해 낚시터로도 많이 알려졌다. 과거 송지호가 있던 자리는 어느 구두쇠 영감의 문전옥답(문 앞의 비옥한 논)이었는데, 어느 날 노승이 시주를 청했지만 응하지 않자 화가 난 노승이 토지 중앙부에 쇠로 된 절구를 던지고 사라졌다. 이 절구에서 물이 솟아 나와 송지호가 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하지만 이 노승의 분노가 전화위복이 됐는지, 드넓은 호수가 수생 자원을 풍부하게 빚어 놓은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햇빛이 거울과 같이 투명한 호수를 때리고 반사돼 눈이 부시다. 호숫가와 조금 떨어져 송지호 쉼터와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 햇빛을 피한다.

송지호 동쪽 산책길로 코스를 이어간다. 산책길에서 보이는 송지호 관망 타워는 마치 우주선이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독특한 외관을 갖고 있다. 타워 정상에서는 360도 모든 방향으로 송지호 경치를 조망하는 전망대가 있어 동쪽으로는 파도가 치는 동해안을, 서쪽으로는 아늑한 송지호를 내려다볼 수 있다. 고요한 호수와 싱그러운 숲길에는 상쾌한 발걸음 소리만이 들린다. 숲길의 소나무들은 하늘을 가릴 만큼 빼곡히 자라 터널을 이룬다. 그러나 산책길 숲이 1996년 고성 산불로 인해 많이 소실된 것이라고 한다. 산불이 아니었다면 더욱 더 아름다운 길이 됐을 것이란 생각에 아쉽기만 하다.

공현진 해변 수뭇개 바위 [사진=김준철 기자]
공현진 해변 수뭇개 바위 [사진=김준철 기자]

송지호를 돌아 마을로 들어가는 언덕에 올라서니 기와지붕과 초가지붕이 인상적인 마을이 나타난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촬영 세트장이라고 착각할 만하다. 왕곡 마을은 5개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에 위치한 마을이다. 5개의 산은 오음산을 주산으로 해발 200m 내외의 야산인 공모산, 두백산, 순방산, 제공산, 호근산을 말한다. 왕곡마을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사이에 고려에 충성하는 강릉 함씨가 이곳에 들어와 동족마을을 형성하면서 만들어졌다. 과거에만 사람이 거주하고 현재는 이주를 끝낸 것으로 보였는데, 아직도 마을에 거주하는 50여가구가 있다. 실제 관광객, 공사 인부 등으로 보이지 않는 차림새의 인파가 마을 곳곳을 돌아다닌다. 매년 7~10월에는 왕곡마을 민속체험축제가 열려 전통 가옥에서 수박 체험, 농촌 생활 체험 등을 할 수 있고, 왕곡마을보존회는 4~10월 전통한옥 숙박 체험을 온라인 예약 시스템으로 운영한다. 전통민속마을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인정돼 2000년 국가민속문화재 제235호로 지정·관리 중이다.

일단 마을 안에 들어서면 과거로 시간 여행에 빠져든 듯한 느낌이 든다. 안동 하회마을 등 민속 마을을 다녀온 기억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마을 입구에는 민박집들이 있고 익살스러운 모습의 장승들도 서 있다. 마을은 중앙의 개울을 따라 이어져 있는 마을 안길을 중심으로 산을 등지고 있고, 내부에 가옥들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는 형태다. 가옥과 가옥 사이에는 넓은 텃밭이 있어 이를 경계로 가옥들이 분산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많은 집을 다 돌아보기엔 시간이 오래 걸려 대표적인 집 하나만 정하고 간다. 긴 겨울을 나기 위한 북방식 한옥으로 윤동주 생애를 조명한 영화 ‘동주’의 촬영 장소를 살펴본다. 예스러운 분위기가 인상적이라 꼼꼼하게 주위를 둘러보고서야 발을 뗄 수 있다.

왕곡 마을을 빠져나오면 7번 국도와 이어지는 송지호로를 다시 만나 해안 방향으로 이동한다. 이윽고 나타난 해변은 공현진 해수욕장으로 모래가 곱고 수심이 얕아서 해수욕장으로서 입지 조건이 좋은 편이다. 조용하면서도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해수욕장에는 주로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데, 이 때문인지 해변 주변에는 싱싱한 활어회 가게가 즐비하다. 공현진 해변의 또 다른 스폿은 수뭇개 바위다. 바위 이름의 유래는 확실치 않다. 1910년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바위 3개가 묶여 있다는 뜻에서 ‘삼속도(三束島)’로 기록돼 있다. 세월이 지나며 한글 표현이 ‘셔뭇뒤’, ‘스뭇대’를 거쳐 ‘수뭇개’로 구전됐다고 추측한다. 10km에 가까운 코스를 밟느라 기진맥진하지만 수뭇개 바위로 올라가 바람을 쐰다. 거센 파도가 밀려와 부딪히는 포말이 높이 올라가는 모습도 장관이다. 멋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서 종착지인 가진항으로 간다.

가진항 [사진=김준철 기자]
가진항 [사진=김준철 기자]

■ 48코스 : 12월 15일 송림과 동해를 휘감는 칼바람(가진항~거진항 13.8km)

앞선 코스가 비교적 짧아 코스 하나를 더 밟는데 무리가 없다. 코스 초입 가진항과 방파제가 나타난다. 가진리는 다른 어항보다 수산물이 많이 나서 주민 생활에 덕이 많이 됐다고 해 100여년전부터 덕포라고 불리다가, 이후 작은 나루가 하나 더 생겨나자 가포진이라고 불렸고 이를 1914년 가진리로 고쳤다고 한다. 옛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항구에는 고깃배들이 드나들고, 허름한 상가 건물에는 활어회 센터로 식당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입점해 있다. 가진항 방파제에서 꺾인 길은 해변이 아니라 가진리 마을을 가로지른다. 별도의 인도가 없지만 한적한 도로라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걷기엔 충분하다.

간성 읍내를 가운데 두고 북천과 남천이 각각 위아래를 흐르는데, 그 중 남천을 먼저 건넌다. 남천1교 근처로 풍력 발전기가 다수 설치돼있다. 이곳에서도 풍력 발전이 가능한지 의문이 든 순간 거센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발전기 프로펠러가 돌아가며 굉음을 낸다. 강풍과 소음 탓에 주변 풍경을 한 컷 담기에도 버거울 정도다. 남천을 지나면 잘 알려지진 않았으나 아담한 동호리 해변이 나온다. 해변에는 체육 시설과 쉼터가 마련돼 있다. 간성 읍내 아파트 단지에서 가까운 거리라 주민 편의 시설과 관광객들을 위한 포토존이 함께 있는 풍경이다. 다양한 구경거리는 없지만 탁 트인 바다에 조형물 등이 잘 어울려 한참을 멍을 때리고 보게 된다.

동호리 해변 포토존 [사진=김준철 기자]
동호리 해변 포토존 [사진=김준철 기자]

정신을 차리고 해변을 벗어나면 여행객은 다시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 바로 동호리 해변 숲길이 쭉 뻗어 있다. 폭신한 흙길도 하늘로 향해 쭉쭉 뻗은 소나무가 만드는 그늘도 인상적이다. 또 숲 안으로 들어가자 이전까지 세차게 불던 바람도 얼굴을 간질이는 수준으로 잦아든다. 숲길이 해변과 가까워 파란 바다, 희고 고운 백사장, 우거진 녹색 숲이 여행객 눈을 편하게 해준다. 솔숲을 벗어나 동호1길 도로로 나와 넓은 간성의 들판을 걷는다. 진부령 산록에서 발원한 북천과 해발 1052m 마산에서 발원한 남천이 동해와 만나면서 만든 고성 평야는 고성군에서 쌀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코스 중간 ‘ㄷ’자로 휘어진 길을 걸으면 북천에 도달하게 된다. 이곳도 칼바람이 보통이 아니다. 더불어 남천과 비슷한 모양의 하구를 볼 수 있다. 바로 모래로 막힌 하구다. 석호의 형성과 발달은 해면 상승과 조수간만 차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바다 수면이 상승하는 시기에 하천을 따라서 흘러 내려온 토사가 하구에 꾸준하게 퇴적돼 사주와 사취를 형성하게 되고, 바다 수면이 다시 정상적으로 내려가게 되면 모래톱이 흐르던 하천을 자연스럽게 막아서 석호가 형성된다. 고성의 남천과 북천도 비슷한 모양이다. 석호는 동해안에만 존재하는 호수로 해안선을 따라 모두 18개 석호가 112km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곳도 멋진 호수로 바뀌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해송 숲 [사진=김준철 기자]
해송 숲 [사진=김준철 기자]

북천변길을 따라가다 보면 북천철교가 보이기 시작한다. 북천철교는 1930년 일제가 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건설한 원산-양양간 동해북부선 철교다. 1950년 한국전쟁 때엔 북한군이 철교로 군수 물자를 운반하자 아군이 철교를 끊게 된다. 교량 하부에는 수많은 포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 전쟁 비극을 눈으로 직접 확인 가능하다. 탄생과 폭파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철교인 셈이다. 고성은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했던 옛 철도 요충지였다. 분단 전 동해북부선 철도 노선 중 고성 구간이 약 43%나 차지했다. 60여년간 교각만 황량하게 남아 방치된 것을 행정안전부가 평화 통일을 염원하고 저탄소 녹색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이곳을 평화누리길로 지정했다. 고성군은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부터 폐철각을 기증받아 철각과 상판을 설치해 걷기와 자전거 마니아들을 위한 전용 교량으로 리모델링했다. 철교 위에 조성한 데크길을 건너 북천 하구 바닷가까지 나간다.

반암리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다시 소나무 숲길을 만난다. 바람을 피하고 소나무 향을 맡을 수 있다는 기쁨으로 서둘러 숲속으로 향한다. 꽤 긴 소나무 길을 지나면 반암 해변이다. 반암 해수욕장 모래 해변은 12㎞나 되지만, 군사지역 내에 있어 현재는 200m만 개방한다고 한다. 통제 중이라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이 자랑이고, 다른 해수욕장들보다 한적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반암은 과거 ‘밤바우’라고 불린 마을이다. 현재 반암에서 북쪽으로 4km 떨어진 곳에 100명이 앉을 수 있는 큰 바위가 있다는 설에 근거를 둔다. 지명이 유래하는 바위는 현재까지 찾지 못했으나, 마을 사람들은 지형이 많이 변한 탓이라 여기고 있다. 하지만 해수욕장 근처 길을 걸으면 유래 그대로 바위가 많은 마을임을 알 수 있다.

북천철교 데크길 [사진=김준철 기자]
북천철교 데크길 [사진=김준철 기자]

길은 반암 해변을 뒤로하고 송포리로 진입한다. 긴 송포리 해변도 깨끗한 인상을 주지만 아직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진 않은 모습이다. 거진 1교로 건봉산 자락에서 발원해 동해로 흘러가는 자산천을 건너면 종착지인 거진리로 들어간다. 중간 생뚱맞게 아파트 단지가 바다를 향해 우뚝 서있다. 바다와 거리는 10~20m 남짓이라 거주자들이 탁 트인 경치를 볼 수 있다는 부러움이 드는 동시에 해안 침식으로 안전이 우려된다. 거진리 끝자락의 거진11리 해변에는 아기자기한 조형물을 많이 만들어 놨다. 파도 소리가 잔잔하게 들리는 게 긴 거리를 움직인 여행객 피로를 날려준다.

거진 해수욕장을 지나면 거진 시내가 나온다. 고성 해변가에 위치한 시내로선 가장 큰 규모다. 시외버스터미널도 있고 숙박 시설 및 음식점도 많아 여행객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행지로 보인다. 거진항은 국가 어항으로 관리되는 곳으로 오래전부터 천혜의 어항으로 발달해왔다. 500여년전 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던 중 이곳에 들렀다가 산세를 훑어보니 꼭 ‘클 거(巨)’자와 같이 생겨 거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후문이다. 1930년대 해방 전 많은 양의 정어리가 잡히고, 1970년대 오징어가 호황하며 항구와 마을이 함께 커갔다. 해방 후 정어리 흉어로 어촌이 퇴락했으나, 명태가 잡히면서 다시 번창을 누리게 됐다고 한다. 명태 덕분에 ‘거진항에는 거지가 없다’는 말이 돌 정도로 부촌이었다. 과거 부촌에 걸맞게 풍족한 식도락 여행으로 코스를 종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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