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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투어] ⑬삼척·동해 대자연 품은 힐링 로드

  • Editor. 김준철 기자
  • 입력 2023.07.26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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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마다 걷기 여행을 하고자 합니다. 요즘 걷기 여행이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충 둘러보고 돌아서는 관광은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모든 감각을 통해 직접 수집된 오감만이 유일하게 진정한 관광으로 여행자를 인도합니다. 길 위에서 게으르게 움직이며 풍경과 세상사를 느껴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사유하고 재발견하고자 하는 여행자의 수요도 점차 늘어나는 중입니다. 천천히 구석구석 걷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여행이 주는 선물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편집자 주>

[업다운뉴스 김준철 기자] ‘해파랑길’은 우리나라 동서남북을 잇는 코리아 둘레길의 동해안 구간으로, 부산광역시 오륙도 해맞이 공원을 시작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750km의 장거리 걷기 여행길이다. 해파랑이라는 명칭은 동해의 상징인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라는 조사 ‘랑’을 조합한 합성어로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 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지난해 4월 ‘2021 걷기 여행 실태조사’를 발표했는데 해파랑길이 2021년 걷기 여행자가 선택한 국내 걷기 여행길 중 2위로 꼽혔다. 만족도 면에선 97.3%의 이용자가 여행에 만족했다고 응답했다. 방학, 휴가, 연휴 등을 맞아 해파랑길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몰려들 정도로 그 인기는 엄청나다. 참고로 1위는 ‘제주올레’다.

해파랑길 삼척·동해 구간 [사진=두루누비 홈페이지 캡처]
해파랑길 삼척·동해 구간 [사진=두루누비 홈페이지 캡처]

■ 32코스 : 4월 28일 아기자기한 길과 웅장한 해안 절벽(맹방 해변 입구~추암역 22.9km)

지난 코스 방문했던 맹방 해수욕장은 북새통이었다. 하지만 평일 오후 풍경은 다르다. 해수욕장 초입 공사 때문에 조금 부산스러울 뿐, 파도가 잔잔하게 치고 덕봉산이 우뚝 솟아 단조로운 수평선에 볼거리를 더한다. 맹방은 매향 의식을 치르던 곳이란 뜻의 매향방(埋香坊)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매향 의식은 향나무를 잘라 제사를 지내고, 그것을 민물과 바닷물이 합쳐지는 지점에다 묻는 것을 의미한다. 300년 후에 그것을 꺼내다가 피우면 향이 매우 좋았다고 전해져 힘껏 숨을 들여 마셔 보지만 짭조름한 바다 냄새만 날 뿐이다. 맹방 해변은 하맹방과 상맹방으로 이어진다. 두 해변 사이엔 맹방 유채꽃 마을이 위치해 있다. 사실 지난 코스를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유채꽃 축제가 열리는 걸 봤다. 유채꽃밭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즐기는 어마어마한 인파에 놀랐는데, 꽃이 질 때쯤이라 그런지 한산하다. 그래도 몇몇 관광객이 이곳을 찾아 카메라에 마지막 봄을 담는다.

맹방을 훑고 7번 국도 아래로 북진한다. 삼척 화력 발전소 항만 시설 뼈대가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덤프트럭들이 자재를 싣고 먼지를 날리며 경사가 심한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장면이 아찔하다. 한재 고개를 넘어 오분동으로 내려오면 오십천 산책길이 나타난다. 오십천 초입 풍경은 삼척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다와 강이 만나고 멀리 거대한 시멘트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가 강을 가로지르며 돌아가고 있다. 삼척은 국내 석회석 주요 매장지 중 한 곳이라 시멘트 공장이 많이 들어서 있다. 산책길을 따라선 하수 처리장까지 있어 공장·시설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지는 독특한 풍경이다.

맹방 유채꽃 마을 [사진=김준철 기자]
맹방 유채꽃 마을 [사진=김준철 기자]

오십천 상류를 따라 올라가다가 다시 길을 건너 하류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 중반이다. 코스를 보니 어딘가 닮았다. 바로 울산 코스 중 하나인 7코스와 유사하다. 7코스도 태화강을 따라 북진하다가 십리대숲으로 꺾어지는 코스인데, 이번에도 죽서루를 반환점으로 삼고 돌면 장미 공원이 나오게 된다. 해파랑길 후반부로 향하며 많은 데이터가 쌓였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죽서루를 관통하진 않으나 죽서교를 지나며 고개를 돌리면 누각 지붕이 빼꼼 보인다. 조선시대 누각으로 관동팔경 중 유일하게 강을 끼고 있으며, 1963년 보물로 지정됐다고 한다. 오십천변에 조성된 장미 공원엔 222종 16만주, 약 1000만송이의 다양한 장미가 식재돼 있다. 한 공간에 피는 장미송이 수론 세계 최대 규모다. 아직 장미가 필 시기가 아닌지 봉오리만 살짝 맺혀 있었지만 향기가 조금 나는 듯해 상쾌하다. 자동 조수 시설을 이용해 물을 뿌리며 만개를 돕는다.

삼척항으로 올라가며 보는 경치가 압권이다. 오른쪽엔 큰 항구가 자리하고 있고, 언덕 위엔 오밀조밀 들어선 집들이 이색적이다. 지금은 삼척 시내가 잘 형성돼 있으나 과거엔 이곳이 삼척 경제의 중심이라고 한다. 항구 크기만 봐도 쉽게 수긍할 수 있는 얘기다. 해방 후 삼척항은 대구, 멸치, 오징어, 정어리 등 풍족한 수산물로 넘쳐났다. 실제 1930년대 정어리 가공 공장이 세워질 정도였고, 정어리 기름으로 비누와 양초를 만들어 사용했다. 오늘날엔 인근에 위치한 동해항과 더불어 시멘트 반출의 전진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삼척항 초입부터 대게 거리가 형성돼 있다. 조선시대 허균 선생의 ‘도문대작’에 소개됐을 만큼 삼척 대게는 유명했다고 한다. 대게의 고장 영덕 대게와 맛을 비교해 보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발로가 아닐까.

삼척 장미 공원 [사진=김준철 기자]
삼척 장미 공원 [사진=김준철 기자]

경사가 갑자기 급해진다. 방금 본 언덕 위 집 사이를 지나가야 한다. 이곳은 ‘나릿골 감성 마을’로 어업과 관련된 일을 주업으로 생활하는 주민들이 모여 형성된 자연 마을이다. 골목인가 싶으면 집 마당으로 연결되고 마당인가 싶으면 다시 골목과 마주하는, 마치 미로와 같은 골목이다. 빨랫줄에 널린 오징어에서 느낄 수 있듯 어촌 주민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마을 중간 핑크 뮬리원이 있는데, 아직 개화 시기가 아니라 풀만 자라 있다. 조그마한 정원도 있지만 안쪽으로 대대적인 공사가 이뤄지고 있어 모래 바람만 날린다. 언덕 정상에 오르니 뷰만큼은 훌륭하다. 첫 발을 뗀 맹방 해변부터 오분 해변과 삼척항 조형물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급경사를 오른 탓인지 숨이 찬다. 미지근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찰나의 힐링을 즐긴다.

짧은 오르막인 줄 알았으나 등산이 꽤 길어진다. 코스 중간 오랍드리 산소길과 만나는 구간이 있다. 오랍드리는 강원도 방언으로 ‘집 주변’을 뜻한다. 삼척 시내를 중심으로 둘레를 걷는 길이라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앞선 장미 공원 쪽이 2코스 봉황산길을 일부 공유하고, 나릿골길이 1코스 봉수대길과 겹친다. 시민과 여행객이 건강을 다지고 지친 심신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길로 역할을 다한다. 거칠지 않은 산책길, 우람한 소나무, 아담한 쉼터까지 가히 명품길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솔향을 가득 맡으며 봉우리에 오르면 돌무더기가 있는 국난 극복 유적지를 만난다. 봉수대는 조선 성종 때 설치하여 인조 때까지 운용했다고 하는데, 흔적은 국난 극복 유적지에 쌓인 돌과 모래가 전부다.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면 광진항이 반겨준다. 드라이브하는 이들이 전부 차 시동을 끄고 바닷가로 나와 경치를 구경하고, 그늘 아래 텐트를 치고 휴식을 즐긴다. 광진항을 보니 삼척 바다는 맑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삼척항 [사진=김준철 기자]
삼척항 [사진=김준철 기자]

광진항을 지나 비치 조각 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여기서부터는 우측으로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룬다. 바다 절경을 보며 정돈된 데크길을 걸으니 이만한 호사가 없다. 굴곡진 도로를 돌아갈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멋진 해안 도로다. 비치 조각 공원엔 이름대로 여러 조각 조형물이 바다를 등지고 늘어져 있다. 바다를 내려다보기 좋고 다양한 조각상을 감상하는 여유를 가진다. 또 촬영 스폿도 잘 꾸며놔 새천년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하는 이들의 시선을 잡기엔 충분하다. 삼척 가족 여행이나 데이트 코스로 많이 방문하는 곳이라고 한다. 후진 해변은 규모가 작을뿐더러, 과거 삼척 해수욕장 자리를 ‘큰 후진 해변’이라고 해 오늘날 ‘작은 후진 해변’이라고 불린다. 실제 크기가 크지 않지만 방파제를 따라선 낚시꾼들이 오와 열을 맞춰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삼척 해수욕장은 앞이 탁 트인 모래사장이다. 계속해서 바위 해변을 보며 왔는데, 새로운 풍경을 만나니 리프레시된다. 작은 후진 해변과 달리 백사장 너비 400m, 길이 1.5km로 큰 규모의 해변인데다 1984년 국민 관광지로 지정될 정도로 수려하다. 백사장을 따라 민박 등 숙박 시설이 줄지어 있고, 식당들도 즐비해 여행객이 많이 방문하는 모양새다. 삼척 해수욕장 뒤쪽은 쏠비치 삼척이다. 쏠비치는 대명소노그룹의 해양 테마 리조트 브랜드다. 특히 쏠비치 삼척은 그리스 산토리니를 재현한 것으로 건물 외벽부터 하얗고 푸른색이 시원함을 더한다. 이곳에서 숙박하면 좋은 경치를 보며 제대로 힐링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호텔 진입로 쪽으로 가니 가족 단위 여행객이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객실 요금표를 찾아보니 리조트 기준으로 금요일 회원 최저가 14만2000원이다. 이 정도면 뚜벅이 여행객에겐 사치다. 혀를 내두른 뒤 괜히 발걸음을 빨리 해본다.

추암 해수욕장 [사진=김준철 기자]
추암 해수욕장 [사진=김준철 기자]

열심히 걸은 덕분인지 종착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쏠비치 삼척을 우회하느라 한동안 보지 못했던 바다를 다시 맞이한다. 추암 해변으로 넘어가기 전 증산 마을이 나온다. 마을비에 ‘시루뫼’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데, 마을 주변 산 모양이 시루를 닮았다고 해 증산(甑山) 마을 혹은 시루뫼라 불린다. 해가사의 터 기념탑 뒤로 증산 해수욕장과 추암 해변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언덕 위 데크길을 오를수록 추암 해변으로 가까워진다. 데크길을 내려가니 추암 오토 캠핑장에서 야영객들이 굽는 고기 냄새가 훅하고 코를 찌른다. 아침 일찍 맹방 해수욕장부터 공복으로 북진한 탓에 마른 침만 연신 삼킨다. 이곳을 빠르게 벗어나야 정신을 다시 붙잡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으나 추암 해변에선 통하지 않는 말이다. 방금까지만 해도 굶주림에 대충 둘러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지만 해 질 녘의 추암 해수욕장은 형언할 수 없는 아늑함이 있다. 해수욕장 끝엔 촛대바위를 볼 수 있는 산책로가 이어진다. 계단을 오르니 능파대란 전각이 가장 먼저 여행객을 맞이한다. 능파대는 촛대 바위 일대를 부르는 말로 파도가 암석에 부딪히는 아름다운 모습에서 유래됐다. 여기서 퀴즈 하나. 서울 광화문의 정동방은 어디인가. 바로 강릉의 정동진이다. 그렇다면 남한산성의 정동방은 어딜까. 눈치 챘겠지만 이곳, 추암 해수욕장이다. 안내문으로 보며 남한산성과 추암 해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바위길을 조금 내려가면 이번 코스의 하이라이트 촛대바위가 나타난다. 바다에서 솟아 오른 형상의 기암괴석으로 그 모양이 촛대와 같아 촛대바위 혹은 송곳바위라고 불린다. 촛대바위는 애국가 첫 소절에 나오는 추암 일출 장면으로 잘 알려져 있다. 뾰족한 바위가 마치 동해 하늘을 꿰뚫는 듯해 어느 방향에서 사진을 찍어도 걸작이다.

추암 촛대바위 [사진=김준철 기자]
추암 촛대바위 [사진=김준철 기자]

조금 더 구경하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길이 좁아 관광객들 통행을 위해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촛대바위를 지나면 동해 해암정을 지나 출렁다리를 향해 간다. 길지 않은 다리지만 바다 위를 출렁거리는 게 아찔하다. 맑은 바다와 노릇한 석양,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풍경은 추암 해변에서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산책로를 이어 걸으면 추암 조각 공원 외곽에서 안으로 진입하게 된다. 일출 명소답게 다양한 조형물로 공원을 장식해 놓았다. 눈을 사로잡는 조각상과 작품들이 많아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고 추암역에서 대장정의 32코스를 마무리한다.

■ 33코스 : 4월 29일 강변길과 철길, 바닷길이 마음을 다독이다(추암역~묵호역 입구 13.6km)

아침 추암 풍경은 또 다르다. 여전히 풍경은 멋지지만 조각 공원 근처 가게들이 장사 준비로 북적이고 관광객도 빠릿빠릿하게 움직인다. 추암역은 1999년 ‘추암 해돋이 열차’가 운행되면서 영업을 시작한 역임에도 불구하고 역사도, 역무원도 없는 삼척선의 간이역으로 바다 열차와 화물 열차만 정차해 기능상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곳을 기준으로 동해시와 삼척시가 나뉜다. 더불어 동해선이 개통되면 또 다른 변화가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지하도를 빠져나와 공단로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공장 건물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어 퀴퀴한 냄새가 난다. 길은 공단로에서 북평 산단 하수 종말 처리장으로 꺾여 가로질러 나간다. 지난 코스 초입에서도 비슷한 시설을 만났는데, 관광 개발 등으로 해안 지역의 유동 인구가 늘어난 까닭인지 하수 처리장이 많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부지 여유 공간에 해바라기 모양으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게 눈길을 사로잡는다.

공단 항구는 콘크리트 구조물의 딱딱한 분위기였으나, 낮은 고개를 넘어가는 산책로 숲 속은 햇살이 살랑살랑 들어온다. 고개를 잠시 들고 맘껏 햇볕을 쬔다. 산을 내려와 전천을 따라 밟으면 정자 두 개가 연달아 있는 걸 볼 수 있다. 호해정은 1945년 광복의 기쁨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 동해 8경 중 하나인데, 수식어가 무색하게 전천 하류와 시멘트 공장이 가로막고 있어 뷰는 그저 그렇다. 만경대는 조선 시대 광해군 3년 김훈이 향리로 내려와 정자를 세웠다. 1669년 문신인 미수 허목이 주변 경관에 감탄해 ‘만경’이라 했는데, 그 후부터 해당 정자를 만경대로 불렀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전천 산책로를 따라 올라간다. 동해 하구다 보니 하천 안쪽으로 작은 선박이 정박해 있다. 이전 코스 오십천과 비슷하지만 갑자기 날이 흐려지며 차분한 분위기를 만든다. 주민들이 나와 자전거를 타고 산책하고, 유속이 세지 않아 새들이 강 위에 둥둥 떠 있는 모습이 건너편 바쁜 시멘트 공장과 대비된다.

동해시 전천 [사진=김준철 기자]
동해시 전천 [사진=김준철 기자]

철교 앞에서 전천을 건넌다. 동해시는 2010년부터 전천을 환경 친화적 생태 하천으로 변모시키는 녹색 사업을 추진했다. 이 덕분인지 상류로 올라갈수록 수생 식물이 풍부하고, 다양한 종의 물새와 어류가 노닐고 있다. 삼척선 우측에서 철길을 따라 쭉 올라간다. 실제 기차가 움직이는 철길을 이렇게 가까이서 밟아보는 건 처음이다. 동해역으로 향하는 열차와 회색의 시멘트 운반 열차가 철망 사이로 보인다. 철길을 따라가는 농로가 쉽게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무렵 동해역이 나타난다. 역 앞 교차로엔 소나무 한 그루가 고고하게 서 있다. 잠시 휴식을 위해 역사 안으로 들어가니 옛 역사 모습 그대로여서 정겹다.

동해시는 해군 1함대로 유명하다. 사령부는 시내에 있으나 기지는 바다와 붙어있어 잠시 코스를 이탈한다. 항구 쪽으로 향하니 부대가 펼쳐진다. 정문 앞에 헌병이 각 잡고 서 있고, 군함이 워낙 크기 때문에 담벼락 너머 함교가 뾰족 나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군사 시절이라 사진을 찍으며 자세히 구경할 수 없었지만 담벼락을 따라 다시 코스로 진입한다. 해안 도로와 철로 중간에 위치한 산책길을 걷는다. 산책로 초입에는 수형이 독특한 나무들이 줄지어 심겨 있고, 산책로 중간엔 낙산 체력 단련장과 골프장이 있어 푸른 잔디까지 마음껏 본다.

동해역 [사진=김준철 기자]
동해역 [사진=김준철 기자]

육교를 통해 철로를 건너오니 누리호와 KTX 열차가 달리고 있다. 기차 창문이 짙게 선팅돼 있어 제대로 보이진 않으나 몇몇 승객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바로 옆에서 나란히 북진하지만 올라가는 속도는 천지 차이다. 하지만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는 정도는 같을 것이라 생각하니 다시 힘이 난다. 감추 해변은 이번 코스에서 본 가장 작은 해변이다. 주변에 있는 감추사는 신라 진평왕 셋째 딸인 선화 공주가 감추 동굴에서 3년 간 기도를 해 병이 낫자 부처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고 전해진다. 아담한 해변과 사찰 구경을 마치고 다시 감추산 자락의 데크길을 걸어 내려간다.

이제부터는 해변이 잇따라 나타나며 바닷길을 원 없이 걸을 수 있다. 가장 먼저 등장한 한섬 해수욕장은 큰 도로와 철길이란 차단막이 있어서 그런지 조용한 느낌이다. 한섬 해변 인근에선 마린 포트홀(파도의 침식 작용으로 생긴 항아리 모양 구멍)과 시스택(파도의 침식 작용으로 생긴 길쭉한 바위섬)을 관찰할 수 있어 바다 조망뿐만 아니라 지질 관광에도 적합하다. 특히 산책길에 설치된 100m 길이의 ‘리드미컬 게이트’는 LED 조명이 빛나는 조형물이다. 저녁엔 음악이 어우러져 낭만적인 야경을 선보인다고 한다. 굴다리를 지나서 오르막으로 길을 이어간다. 이곳은 ‘행복한섬길’이다. 행복이라는 말을 강조한 것처럼 산책길 중간 중간 따뜻한 문구가 쓰여 있다. 아울러 나무로 깎은 작은 인형들도 데크 난간 위에 앙증맞게 서 있어 동심의 세계로 되돌아 있는 듯하다. 예쁘게 마련된 휴게 쉼터와 운치 넘치는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동해는 덤이다.

행복한섬길은 가세 해변에서 끝나지만 해파랑길은 고불개 해변과 가세 해변, 하평 해변을 거쳐 지나간다. 내리막길을 따라 고불개 해변으로 간다. 한 순간 기암괴석이 눈 앞에 펼쳐진다. 해초와 이끼류가 자라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암석과, 그것들을 때리며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파도는 명관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해변을 정면으로 오른쪽으로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포토존인 호랑이 바위가 ‘어흥’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바다가 잔잔하다 보니 바위투성이의 해변임에도 불구하고 바위 위에 텐트를 치고 바다를 즐기기에도 최고인 해변이다.

고불개 해변 호랑이 바위 [사진=김준철 기자]
고불개 해변 호랑이 바위 [사진=김준철 기자]

고불개 해변을 떠난 행복한섬길은 오르막 숲길을 통해 가세 해변으로 향한다. 좁은 길로 들어올 수 있으나 상당히 한적하고 발자취도 많지 않아 여행객에게 잘 알려진 해변은 아닌 걸로 보인다. 하평 해변으로 가는 길은 철로 담장에 바짝 붙어서 조릿대 사이를 걷는 길이다. 또 바위 절벽 가까이 이어지는 데크길은 절벽 위 소나무 절경을 눈앞에서 감상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평 해변은 둥근 해변에 갯바위들이 멋진 절경으로 늘어서 있는데, 이 바위들이 방파제 역할을 해 거센 파도를 막아주고 아이들이 편안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뒷불 해변과 이어지는 하평 해변 백사장 뒤론 해송림이 넓게 펼쳐져 부곡 돌담 마을 해안숲 공원을 이룬다.

하평 해변을 끝으로 바닷길도 끊긴다. 마을길을 통해서 종착지인 묵호역으로 마지막 스퍼트를 낸다. 묵호역에 앞서 화물 전용역인 묵호항역이 먼저 여행객을 반긴다. 역사와 화물차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묵호항역 뒤쪽에 묵호항이 있다고 표시된다. 묵호항은 1936년부터 삼척 일대의 무연탄을 실어 나르는 조그만 항구에서 1941년 국제 무역항으로 개항됐다. 그러나 개항된 지 70년이 지나면서 항만 기능이 노후돼 정부 차원의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다. 앞서 밟은 동해 신시가지는 대도시 저리 가라 할 수준이지만 묵호역 근처는 옛 정취만이 남은 구시가지가 됐다. 그나마 삭막한 철로 주변의 돌담길을 밝은 색으로 칠하고 어린 아이들이 그린 듯한 그림을 타일로 붙여 놓아 삭막함을 덜어냈다. 마을길을 걷다가 큰 묵호역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동해의 다양한 길에 흠뻑 힐링을 취하고 이번 코스를 종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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